오늘은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 이었다. 열시쯤에 끝나서 버스타러 걸어오면서 신호 때문에 빈 버스 한 대를 놓쳤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십 분 정도 기라디니 다음 버스가 왔는데 만석...ㅠㅠ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탔는데
우연히 어떤 중년의 남자분 앞에 서게 되었다. 그 분은 갤럭시탭을 가지고 있었는데 화면이 워낙 큰지라
별 생각없이 창 밖을 바라보다 그 분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와 열심히 카톡을 하고 계신 모양이다.
계속 별 생각 없었는데 우연히 내 눈에 들어 온 하트.
엄청나게 닭살 멘트를 날리며 누군가와 카톡중 이었다. 힐끗 보니 이름이 그냥 ***라고 이름 석자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진짜 내 남자친구도 그렇게는 안할 완전 닭살 멘트를 계속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셨다. 여보야, 자기야, 자기는 내 천사야, 뽀뽀해줘 등등 내 남자친구랑 나도 못할 정도의 레벨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딱 보니 뭔가 느낌이 쌔해서 나도 모르게 눈이 계속 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 상대방 여자분 께서 먼저 잔다고 인사를 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 오라고 한 채 대화가 끊겼는데 정말 내 모습을 보듯 그 중년의 남자분이 나누었던 대화를 복습하고 괜히 프로필 사진 눌러서 한 번 보고 그러고 계셨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설마 설마 했다. 왜냐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 때문에 아 내가 생각한게 잘못되었나? 했었다.
그런데
카톡 대화를 끝마치고 급하게 문자함에 들어가시더니 '마누라' 라고 저장되어 있는 분에게 '지금 집에간다. 열두시쯤에 봐' 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그 때 시각 열시 쯤이었음)
하.. 보아하니 딸과도 문자를 주고 받고 하시는 나름 자상한 남편 같은데 뭔가 되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들 원래 남자는 살면서 한 번씩은 다 바람 핀다고 걸리면 말 그대로 좆되는거고 안걸리고 살면 더 부부관계도 돈독해지고 오래가는 거라고 한다. 내가 그 분들의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그냥 머리가 아파오고 답답해 졌다.
나중에 내 남자친구도 나와 결혼해서 저렇게 될까, 내 남동생도 저렇게 될까,
익명을 빌려 말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의 대부분은 아빠의 여자 문제때문 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 아빠는 굉장히 자상한 남편, 가정적인 아빠 이다.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정말 애처가인 사람. 그치만 아빠는 신혼 초 부터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나도 중학교때 까지는 정말 까맣게 몰랐다. 우리 아빠가 어느정도 였냐면 나는 중학교때까지 집 청소 그러니까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 하기는 모든 아빠가 다 해주는 일 인줄 알았고, 다른 아빠도 우리 아빠처럼 내가 머리를 감고 나오면 머리를 손수 말려주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아빠가 요리를 해 주며 사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우리 아빠는 가족에게 끔찍히 잘 했고 그 결과 내 동생들은 아빠의 여자 문제를 전혀 모르며 아빠가 매우 자상한 아빠인줄로만 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그날도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내 방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아빠는 전화를 받자 마자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뒤에 아마 내가 못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이따가 다시 전화해'라고 소근 거렸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띵 해졌고 아빠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기가 힘들어 졌다. 그 때부터 아빠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고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싫었었다 그런 나를 엄마와 아빠는 사춘기의 반항으로만 여겼고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아빠의 여자 문제가 빵 하고 터져버려서 큰 싸움이 된 적이 있었고 그 때 아빠는 충격을 받고 여자문제는 다 정리한 것 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아빠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를 꾸미며 우리를 속이고 다닌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아직도 아빠의 벨소리가 울리면 긴장을 하게 되고 아빠의 핸드폰에서 문자를 확인하며 산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본 풍경으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 노력하며 살았던 내 트라우마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게 살고있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 결혼이 하고싶지 않지만 지금 내 남자친구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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